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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7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 천재와 평범한 자의 비극?!

by fivemin 2025.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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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vs 살리에리, 정말 라이벌이었을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는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논쟁 중 하나다. 영화 아마데우스 덕분에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시기하고 독살한 악역으로 남아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전설이 생겨났을까? 그리고 실제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땠을까?

 

 

 

살리에리는 누구였을까?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1750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빈에서 활동한 작곡가다. 오페라와 종교음악에서 명성을 쌓으며 오스트리아 황실의 궁정 작곡가 자리까지 올랐다. 당시 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 명이었으며,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같은 거장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대중에게 살리에리는 그저 ‘모차르트를 시기한 평범한 작곡가’로만 알려져 있다. 과연 그는 단순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을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같은 시대, 같은 도시에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음악을 접했다. 하지만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미워하고 견제했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의 작품을 존중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

 

1785년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와 함께 자신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했으며, 살리에리는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1791년 모차르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마술피리의 일부를 살리에리에게 들려주었고, 살리에리는 이를 칭찬하며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살리에리 독살설의 탄생

그렇다면 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생겨났을까? 이는 모차르트가 죽기 전 남긴 말에서 시작된다.

1791년, 모차르트는 병상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독살하려 한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그는 극심한 피로와 병세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고, 이 발언이 후대에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모차르트 사후 30년이 지난 후, 러시아의 작가 푸시킨이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발표하면서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이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고, 1984년 영화 아마데우스가 개봉하면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인 악역’으로 굳어졌다.

 

 

두 사람의 음악 비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음악적으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모차르트는 천재적인 멜로디 감각과 화려한 기교로 유명했으며, 살리에리는 안정적이고 정통적인 형식을 따랐다.

 

 

  • 모차르트: 감각적인 멜로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자유로운 작곡 스타일
  • 살리에리: 균형 잡힌 구조, 극음악 중심의 작곡, 보수적인 스타일

 

살리에리의 음악이 모차르트보다 덜 혁신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오페라들은 당시 유럽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타라르(Tarare)*와 *라스다리(Les Danaïdes)*가 있다.

 

 

결론 : 천재와 평범한 자의 이야기?

 

살리에리는 뛰어난 작곡가였지만, 모차르트와 같은 ‘신이 내린 천재’는 아니었다. 그 차이가 두 사람의 명성에 극명한 차이를 만들었고, 후대의 창작자들이 ‘평범한 자가 천재를 시기한다’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미워한 적도, 독살한 적도 없다. 그는 오히려 음악 교육자로서 후배들을 길러내며 자신의 시대를 빛낸 인물이었다.

 

‘천재와 평범한 자의 비극’은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동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갔다. 결국,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설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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